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우리가 3일 동안 묵었던 호텔은 상트 시내를 약간 벗어난 교외에  새로 지어진 호텔이다.
러시아 권력고위층(?)의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 주변 환경이 고즈넉하고 숲길이며 공원이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들뜬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주변을 산책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대제가 핀란드만에 접한 네바강의 하구에 건설한 완전한 계획도시이다.
당시 스웨덴령이었던 네바강 하구 유역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페트로파블로브스키 요새를 새우고 반대편 강기슭에 '유럽을 향한 창' 을 열기
위한 신도시 건설에 착수하였다.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상트페테르부르크라 명하였다.
성 베드로의 도시, 베드로는 표트르 대제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표트르대제는 즉위 초에 신분을 위장하고 유럽을 순방하며 특히 네덜란드에서 조선술을 배워 오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빠르게 유럽화시켜 나간다.
모스크바가 수도였던 그전의 러시아는 250여년간의 몽골지배의 영향으로 아시아적 색채가 강한 나라였다면 표트르대제는 유럽의 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여 러시아가 빠르게 유럽화 하는 기초를 다지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우리가 처음 간 곳은 파블롭스키 궁전이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손자 (훗날 알렉산드르1세가 됨)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여 아들 파벨에게 지어준 궁전이라고 한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독일 출신 러시아 왕후였으나 무능한 남편인 러시아 왕을 살해하고 직접 황제가 되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파벨이
못마땅하여 손자 알렉산드르에게 기대가 컸다고 한다.
이태리 건축가를 초빙하여 만들어진 궁내부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될 겨울궁전 및 여름궁전에 비하면 이건 서막에 불과하였다.

궁전 주변으로는 광할한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왕들의 화려한 사생활을 위한 부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서?
왕과 귀족,권력층들이 누린 부귀영화의 이면에는 그 시절 농노들의 고달픈 삶은 극에 달했음을 같이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볼거리들로 가득한 관광자원을 유산으로 남겨주어 미래의 국민들한테 자부심이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점심을 먹고 데카브리스트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1825년 일어난 데카브리스트 난은 실패한 혁명이지만 그들의 뜻을 기려 광장의 이름으로 남겨 기념하는듯 하다.
나폴레옹전쟁에 참전하여 퇴각하는 나폴레옹군대를 따라 유럽까지 진군했던 청년 장교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유럽에 비하여 뒤떨어진 조국을 개혁하고자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만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표트르대제의 청동 기마상이 위풍당당하게 하늘로 비상하고 있다.

구테타로 남편을 죽이고 즉위한 예카테리나여제가 표트르 대제의 후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 조각가를 초빙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는 표트르대제가 세운 페트로파블롭스키요새이다.
네바강 하구 토끼섬에 스웨덴에 항거하기 위한 요새를 건설하면서 군인과 노동자들이 기도할 수 있는 교회를 요새 안에 건립하여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바울의 성당,즉 페트로파블롭스키 대성당으로 명하였다.

따라서 요새 이름도 페트로파블롭스키요새가 되었다.
요새 안에는 표트르대제가 자신의 아들을 의심하여 가두어 죽인 감옥이 있으며 이후 막심 고리키, 도스도예프스키도 이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고한다.
요새 안에도 표트르대제 동상이 있다.

표트르대제는 키가 2미터에 달하는 장신이었으며 유럽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지 못하게 하여 스스로도 솔선수범하였다고 한다.
여러 초상화에서도 그렇고 수염이 없는  대제의 모습은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

카잔 성당은 '카잔의 성모'라는 이콘화를 모신 성당이다.

위키백과에서 이콘은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나 그리스도  또는 성인들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을 말한다.
그림을 성화,조각은 성상이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카잔의 성모' 이콘화는 카잔에서 어느 소녀의 꿈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예시하여 발견되었다. 러시아가 외세의 침략이 있을때 '카잔의
성모'에게 기도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한다. 기적을 행하는, 러시아에서 가장 공경하는 성화가 되었다.
카잔 대성당 기념품 판매대에 핸펀을 놓고 나왔으나 한참 뒤 그자리에 그대로 있어 가슴을 쓸어 내린 헤프닝도 기적이라면 기적이겠다. 소매치기가
출몰하는 관광지이고 더군다나 카잔대성당은 무료로 입장하는 곳이니 말이다.
또한 우리 태극 전사들도 지난 월드컵에서 카잔의 기적을 이루지 앓았는가 말이다. ㅎㅎ

상트는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할 만큼 많은 운하의 도시이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운하를 따라 핀란드만까지 나가 보았다.
운하를 따라  푸시킨이 자주  다니던 카페를 지나치며 그의 결투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내의 염문의 상대인 당테스에게 결투를 신청, 결국은 자신이 죽게 되는 비극적 결말에 대하여~~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 아닐수 없었겠으나 그 또한 그시절의 낭만이었을까?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운하를 따라가며 그의 시인다운 인생의 끝맺음이 아름답다 여겨진다.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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