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3일째
톨레도 관광을 끝내고 파티마 대성당으로 향했다.
파티마는 포르투갈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베리아 반도 서쪽으로 길게 자리 잡은 포르투갈은 우리나라 면적과 비슷하고 인구는 천만명 좀 넘는다고 한다.
같은 이베리아 반도 안의 두나라지만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넘어가니 지형이 바뀌면서 자연환경도 달라지는 느낌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여러 가톨릭 왕국이 나누어졌을 때 이런 지정학적 요인이 작용하여 왕국이 세워지고 오늘날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두 나라로 정착된 게 아닌가 싶다.
파티마 성당은 1917년 어린 세 목동 앞에 성모님이 나타나심을
기념하여 대성당이 지어졌다.
톨레도를 떠날 때부터 흐리던 날씨가 포르투갈로 접어들어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가 되었다.
악천후로 밤 9시에 거행되는 미사에는 불참하였다.

어두워서야 도착한 파티마 성당

나도 한 때는 가톨릭 신자였다.
어느 순간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의, 사랑, 평화, 공동체에 대한 소명 등, 모든 종교의 선의에는 존경을 표하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과연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였는지 역사적으로 기록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과 출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그 시대 집단 최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파티마 성당 성모님 앞에서 사진 촬영하는 비구니 스님

이번 투어에 비구니 스님 여섯 분이 동행하였는데 8일 동안 종교적인 금욕과는 거리가 먼듯한 그 스님들의 여러 행동들을  보면서  내 친구 마리아 수녀님의 맑은 삶이 떠올랐다.
마리아 수녀님은 수녀로서 항상 금욕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파티마 성당에서 기적의 성모님을 알현하고 초  하나 사서 내 친구 마리아 수녀님의 성모님께 친구의 안위를 보살펴 달라고 기도하였다.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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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67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로마제국, 서고트왕국, 이슬람왕국을 거쳐 1085년  가톨릭의 가스티야 왕국이 점령한 이후  1560년 마드리드로 수도가 이전되기 전까지 가스티야 왕국의 정치적 사회적 중심지였던 도시이다. 따호강이 휘감아 도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톨레도는 외적을 방어하는 데는 최적의 장소였으나 인구가 늘고 도시가 팽창하는 데 지정학적 한계가 있어 수도를 마드리드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파라 본 톨레도 전경, 따호강이 도시의 성벽을 휘감아 흐른다



언덕 아래 평지에서 버스를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좁은 골목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중세 도시의  투어가 시작된다.

좁은 골목길에서는 마주 오는 자동차를 피해 가며 걸어야 한다.  옆면이 긁혀 있는 차량이 많은 것을 보니 이곳에서의 운전은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한다.

짠! 톨레도 대성당이~~

톨레도 대성당은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225년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가톨릭 연합세력들이 톨레도, 코르도바, 세비아 등을 함락하면서 이슬람의 학자, 수공업자, 건축가들을 받아들여 이들이 발전시킨 예술 양식을 무데하르양식이라고 한다.
1492년 그라나다 함락으로 레콩키스타(재정복)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이슬람  신민들을 관용하는 통치가 이루어졌다.
이런 무데하르 양식이 스페인 예술의 밑바탕이 되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만들어 내었다.
가톨릭과 이슬람이 공존하며 만들어낸  동서 융합의 찬란한 문화이다.

톨레도 대성당 안에 있는 무게 180kg 높이 3m, 5000여개의 금 은 보석으로 만들어진 성체 현시대(Custodia), 그 화려함에 입이 쩍 벌어진다


대성당 내부는 신대륙 발견으로  시작된 스페인 전성시대의 엄청난 부가 집약된 호사스러운 장식품들로 가득하다. 이 부의 원천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수탈한  재물들이란다. 대성당 내부에 보물들이 채워질 때   반대편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의 문명은 파괴되고 식민지가 되어갔다.
아름다운 대성당을 보며  아메리카 대륙의 불행을 떠올린다.

대성당은 거대한 무덤이기도 하다.
비문이 써져 있는 바닥 밑에는 누군가의 무덤이 있고 그 위 천장에는 무덤주인의 모자가 매달려 있다.
대성당  한쪽으로는 칸칸이 개인 기도소가 있는데 말하자면 세력가들한테 작은 성당을 분양했다고나 할까~~ 분양받은 기도소를 자신의  재력을 뽐내듯이 맘껏 치장했다고 한다.

성당안 개인 소유였던 작은 기도소. 성화가 가득하다.

엘 그레코, 오르가스백작의 매장

산토 도매 성당에서 오르가스백작의 매장을 보았는데 엘 그레코의 성화는 다른 성화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색감도 많이 어둡고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나 신체들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중세적이지 않고 현대적이다.

따호강 위의 산 마르틴 다리

꼬마열차를 타고 톨레도를 크게 한 바퀴 돌아 전망대에 올라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톨레도를 보면서 중세의 시간을 상상해 본다.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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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게 스페인을 여행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제1순위에 넣고 싶다.
프라도 미술관은 수도 마드리드에 있으며 스페인 왕궁의 역대 군주들이 수집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 소장된 대부분의  미술작품들이 스페인 왕실 등에서 소유해 왔던, 오직 스페인의 예술품이라는 거에 이 미술관의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3000여 점에 달하는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고작 2시간 동안에 몇몇 유명 그림을 스쳐 지나가듯이 본 것으로 이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을 어찌 감동이라 말할 수 있겠냐만.
살바도르 달리, 가우디 등 스페인을 대표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이 미술관의 작품에서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나 같은 문외한도 어떤 그림 앞에서는 짧게 지나치는 순간에도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 없는 감동과 경이로움을 경험하였다.

프라도 미술관 입장권


프라도 미술관 입장권은 전시된 작품의 한 부분을 주제로 정하여 제작된다는데 올해는 작품 속 손이 주제라고 한다.
내가 받은 입장권  손의 주인공은 엘 그레코의 작품이다. 엘 그레코는 1500년대 말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화가인데 성서를 주제로 그린 그의 그림들은 내가 주로 보아 왔던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화풍의 그림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엘 그레코의 그림이 전시된 방으로 들어섰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고통이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수태고지이다.
엘 그레코는 그 시대보다는 현대에 와서 더 조명받는 화가가 되었다.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약 1435년, 220×262cm

그  당시 쓰였던 그림 안료들은 전부  자연에서 얻은 색들이었는데 자연의 색으로 표현된 풍부하고도 기품 있고 우아한 색감은 현대 회화에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저 세상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
(위 그림의 사진과 더불어 앞으로 소개될 그림의 사진들은 인터넷상에서 캡처해서 색감이 엉망임을 미리 알려둔다.)
나는 위 그림에서 성모마리아의 의상  청색에 매료되었는데 마땅히 성모마리아께서 입어 마땅한 성스러운 색이라는 느낌이 팍 왔다.^^
그 당시엔 원료를 쉽게 구할 수 없어 가장 비싼 염료였다고  한다.

이 잘생긴 이는 누구? 아프레히트 뒤러, 자화상 1498년, 52×41cm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는 화가라는 직업이 그다지 높은 신분은 아니었다는데 자기애로 똘똘 뭉친 이 작가는 당당하게 자화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왠지 이 금발의 꽃미남 화가는 그 시절 많은 여자들을 설레게 했을 듯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스스로 화가의 길을 선택한 자긍심 넘치는 화가였다고 한다.

위 그림은 첫 번째 세 번째가 두 번째 그림을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배치된 3단짜리 병풍처럼 제작된 제단화이다.
이 그림의 제작 예상연도가 대략 1500년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에덴동산, 타락한 현실세계, 지옥의 풍경을 묘사한 내용이다.  기괴한 모양의 동물식물들이 인간과 기묘한 조합으로 등장하며 그런 초현실적인 표현들이 음산할 듯도 하지만 전체적인 색감은 화사하고 부드러워 그림 자체는 유니크함으로 다가온다.
이 그림을 그린 히에로무니스 보스는 그 당시 인간의 타락을 경고하는 종교적인 엄격함을 강조했겠지만 21세기의 무신론자인 나는 재밌는 풍자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이런 기발한 회화적 상상력이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656년, 318×276cm

' 시녀들'이라고 후대에 명명된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이며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손꼽는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합스부르크 걸작들 전시회에서도 보았던 마르게리타 공주와 시녀들을 그린 작품인데
아무래도 내 눈에는 왼쪽에 큰 캔버스를 마주하고 관람자를 향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 같다.
가이드의 말대로 어느 정도 물러나 거리를 두고 이 그림을 감상하니 그림 속 거울에 비친 국왕 부부의 얼굴과 계단을 올라가는 남자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살아나며 나 또한 그 시대 궁정 속으로 들어가 왕실 가족과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2일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


내가 오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고야의 이 두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근대가 열리는 역사의 현장을 보는듯하다.
권력에 맞선 민중의 궐기와 탄압!
신과  왕, 귀족이  그림의 주인공이던 시대는 가고 비로소 민중이 주인이 되는 시대의 신호탄이 된 그림 앞에 섰다.
공포에 질린 총살 직전의 두 팔 벌린 이름 없는 이의 모습이 이곳에 전시된 그 어떤 성화보다도 거룩하다.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나오니 스페인에 대하여 나름 많이 알게 되었다.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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