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BEY ROAD . THE BEATLES

노래가 있어 좋았다!
내 삶의 배경음악 1

산책할 때나 운전을 할 때 또 음식을 준비할 때도 에프엠 음악방송을 듣거나 멜론으로 음악을 듣는다.
나의 지루한 일상에 음악은  조미료이다.
음악도 음식과 같아서 문득 지난 시절 특별한 기억과 함께 그 순간의 음악이 떠 오르곤 한다.

옛날 옛적 손바닥만 한 트래지스터 라디오가 집에 있던 유일한 음향기기였던 시절 분명 그 시절부터 유행가라는 걸 듣기 시작했었다.
때는 1960년대 말쯤 전축이라는 음향기기가 집에 들어왔다. 이웃에 극장에서 음향기사로 일하시는 친구 아버님께서 야매로(ㅋㅋ) 만들어 주셨다. 기억에 남는 엘피판은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 버린 사랑'이다.
https://youtu.be/NgMTf20rP78?si=miHBzO-nkvpADb1n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을 번안한 곡이다.
집에 전축이 있다면 한 장 이상은 있었을 국민가수 이미자의 앨범도.
그 시절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대 유행했었다.
https://youtu.be/TD9yma7pkN0?si=z5JcxLOsxlwZi8-N

지금의 트로트와는 다른 품격이 느껴지는 곡이다
이웃에 불법  양조장이 있었는데 그 집 고등학생 언니가 프랑스 영화 '남과 여'를 보고 와서 자랑삼아 줄거리를 얘기해 주었다. 영화도 엄청 유행했고 덩달아  주제곡도 많이 흘러나왔는지 아직도 그 음이 생생하다.
https://youtu.be/9tMd8n_eXQU?si=jrDMmmEQfb38fx_m

국민학교 5학년 때 이웃에 언니 친구네가 이사를 왔다. 그 집엔 대학생 언니  오빠도 있고 고등학생  언니에 우리 언니 친구인 중학생 언니, 나보다 학 학년 위지만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된 아이가 있었다. 언니 오빠 탓인지 그 친구는 무척 조숙했다. 그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  전축을 틀어 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라고 앨범재킷을 보여주는데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한창 감수성 충만한 소녀가 좋아할 만한 강열한 외모의 사진이었다. 외국밴드라면 비틀스가 대세였던 시대였는데 그 친구가 제일 좋아한 밴드는 도어즈라는 밴드이고 앨범 사진의 주인공은 리더인 짐 모리슨이다.
https://youtu.be/cq8k-ZbsXDI?si=Tpb5ux1dW9Z6yuZG

그날 들었던 음악은 기억나지 않지만 도어즈라는 이름과 퀭한 눈을 한 머리 긴 이방인의 이름 짐 모리슨은 뇌리에 박혔다.
한참 뒤 밴드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즐겨 듣게 되었을 때 도어즈라는 밴드와 요절한  짐 모리슨이  나름 그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임을 알게 되었다. 60년대 말의 음악이지만 지금 들어도 좋다.
60년대 말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이다.
앞서 말한 친구의 대학생 언니가 이대생이라서 더욱 잊히지 않는다.
그 공연이 얼마나 난리굿이었는지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https://youtu.be/y6E2hHHg3V4?si=qDVLFHg2t3V2BnP-

역시 이웃에 조리공장이라고 소규모 가내수공업 공장이 있었는데 그 집의  여고생 언니는 말하자면 공부는 뒷전인 살짝 바람난(ㅋ) 야간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나를 무척 이뻐해서 한 번은 미아리 극장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때 보았던 영화가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던 거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영화관에 걸려 있는 여배우 사진을 가리키며 날더러 좀 닮았다 해서 우쭐했었던 기억이 난다.
https://youtu.be/ycvycKh2_lo?si=SEzbdENR0ZoD0IIT

덩달아 남진의 노래도 엄청 들었다.
바람난 여고생 언니가 좋아한 가수는 문주란이다. 나를 앞에 앉혀 놓고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를 열창하곤 했다
https://youtu.be/GYZ4BNs8Wp8?si=af9aTyiwVKNlbPfx

6학년 땐가  이사를 했다.
허름한 산동네 두 칸 방에서 그 시절 막 지어지기 시작한 서민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간 집 옆집에 역시 언니 오빠가 있는 대가족이 살았는데 부모님이 서울 시내 큰 시장에서 장사를 하셔서 밤늦도록 아이들 집합소가 되었다.
기억에  중학생 우리 언니와 또래가 있어 그 집에 자주 갔는데  대학생이었을까 큰 오빠도 가끔 어울려  놀아 주었다.
방에 옹기종기 모여 귤도 까먹고 외국인들 사진으로 도배된 잡지도 보여주고 했는데 야한 잡지는 아니었다.
그 집 오빠는 사이먼과 가펑클을 좋아했던 듯.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철새는 날아가고', 그 당시 알게 된 팝송이다.
https://youtu.be/4G-YQA_bsOU?si=BGQz73nTcnhMZRt2

https://youtu.be/fYKV7onO1n8?si=NajxXv__ORHoDLN4

슬프게도 시장에 큰 불이 나서 점포를 잃은 옆집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가고 나는 더 이상 좋은 팝송을 알지 못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https://youtu.be/6JUbFj0BIc4?si=3swJdD1H09YyhChE

대학생이 되어 좋아했던 노래

참!  잊을뻔했다.
막내 외삼촌이 군대 가기 전 몇 개월을 우리 집에서 언니 과외 선생으로 있었는데 밤마다 우리 삼 남매 앉혀 놓고 전구불 밑에 서서 열창하던 '뜨거운 안녕'을 어찌 잊으랴

https://youtu.be/HDjdHuW2fdM?si=6qQSxRwVRYNJZBLr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나지만 '아이가 태어 나면 온마을이 키워 낸다' 는 말이 있다.
문화생활의 접촉이 불가능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미약하나마 문화적 감수성의 싹을 틔워준 그 시절의 친구, 오빠, 언니들께 감사를~~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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