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다. 누군가에게는 큰 명절이지만 공휴일이라 즐거운 날! 딱 그 정도의 의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위기에 휩쓸려 기분은 좀 내 보았다.
내게는 그날이 그날인 평범한 하루, 어김없이 호수공원을 산책한다. 바람은 찬데 모처럼 쨍하니 상쾌하다. 그래! 겨울은 이래야지.
봄 여름 가을, 예쁜 꽃들로 장식되었던 공원 정원의 꽃나무들이 계절의 변화에 누렇게 메마른 모습이 보기 싫었는데 어느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이다지도 고운 색을 발하는 식물이 있다니!
같은 장소, 지난봄의 눈부신 정원 모습이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다른 모습의 정원을 가꾸어 주는 보이지 않는 손, 정원사의 정체에 오늘 새삼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시든 꽃나무들을 제때제때 관리해 주는 분들 덕분에 이렇게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며 즐기는 공원 산책이 더욱더 풍요로울 수 있었겠다. 그래! 우리 모두는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일을 하지만 그 일이 다른 이들의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 모든 이들이 선의로 연결되어 있구나! 크리스마스니까! 이렇게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로 한다.
새삼 작년 12월의 계엄 끝에 다시 찾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며칠 전 친구들과 생일파티 겸 메리 크리스마스 겸 송구영신 연말 파티를 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친구가 솜씨를 발휘해 음식을 준비하고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둔 샴페인과 함께 한 행복한 저녁이었다. 음식을 준비한 이는 예전과 같지 않게 죽이는 맛이 아니라며 아쉬워했고 그것은 우리가 늙어서 미각이 둔해진 이유도 있을 거라고 애써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렴 어떤가!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내며 함께한 시간에 감사한다. 조용히 아무 일 없이, 어제가 오늘 같음에 안도하고 또 내일도 오늘 같기를 바라며. 잘 가라! 2025년!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걸어야지, 이번 주도 길을 나섰다. 버스를 길게 타면 멀미를 하는 부실한 체력이라 버스보다는 지하철로 접근 용이한 곳을 찾아서 걷기를 시작하게 된다. 오늘의 목적지는 최근에 완전히 개방되었다는 서울대안양수목원이다. 기흥역 수원역 안양역을 거쳐 마을버스 잠깐 타고 안양예술공원을 지나 관악수목원에 입장하였다.
서울대 안양수목원은 1967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다. 수목원이 일반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지만 수목 보호를 위해 한정된 공간만 개방된 듯. 방문객들은 가운데 넓은 주 도로를 따라 걷는다. 양 옆의 울창했을 나무 숲은 벌써 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지난주만 해도 예뻤을 단풍나무 숲도 볼품이 없다.
수목원 정문에서 1.5km 정도를 걸어 어느새 후문에 도착하였다. 후문을 지나 등산로가 서울대까지 이어진다. 등산은 오늘의 계획에 없었던 터라 잠시 망설이다 후문지킴이 아저씨의, 등산로는 험하지 않고 예쁜 길(아저씨의 워딩)이라는 말에 더 걸어보기로 하였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니 빠르게 걸으면 한 시간 반 정도, 적당한 거리라 도전할만하다. 완만한 등산로가 너무 한적해 길 놓칠까 염려하며 바삐 걸었다. 아무리 예쁜 길이라지만 관악산 아닌가, 돌길이 만만찮다. 수문장 아저씨가 무너미 고개만 넘으면 그때부터는 휠체어도 다니는 길이라는 말은 뻥이다. 무너미 고개까지 숨차게 오른 후 이어지는 내리막 역시 울퉁불퉁 돌길이다.
무너미고개에서 서울대까지 3.5km , 짧지 않은 길이다. 이정표를 보니 삼성산이 쓰여 있는데 작년 6월에 걸었던 서울 둘레길 코스에서 만났던 그 삼성산인가? 그때도 종착지는 서울대 관악산공원 입구였었는데. 길이 낯 익기도 낯 설기도, 그 길이 그 길 같고 모르겠다. 호수공원에 가까워지니 마지막 가을 풍경이 남은 빛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