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게 스페인을 여행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제1순위에 넣고 싶다.
프라도 미술관은 수도 마드리드에 있으며 스페인 왕궁의 역대 군주들이 수집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 소장된 대부분의  미술작품들이 스페인 왕실 등에서 소유해 왔던, 오직 스페인의 예술품이라는 거에 이 미술관의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3000여 점에 달하는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고작 2시간 동안에 몇몇 유명 그림을 스쳐 지나가듯이 본 것으로 이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을 어찌 감동이라 말할 수 있겠냐만.
살바도르 달리, 가우디 등 스페인을 대표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이 미술관의 작품에서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나 같은 문외한도 어떤 그림 앞에서는 짧게 지나치는 순간에도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 없는 감동과 경이로움을 경험하였다.

프라도 미술관 입장권


프라도 미술관 입장권은 전시된 작품의 한 부분을 주제로 정하여 제작된다는데 올해는 작품 속 손이 주제라고 한다.
내가 받은 입장권  손의 주인공은 엘 그레코의 작품이다. 엘 그레코는 1500년대 말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화가인데 성서를 주제로 그린 그의 그림들은 내가 주로 보아 왔던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화풍의 그림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엘 그레코의 그림이 전시된 방으로 들어섰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고통이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수태고지이다.
엘 그레코는 그 시대보다는 현대에 와서 더 조명받는 화가가 되었다.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약 1435년, 220×262cm

그  당시 쓰였던 그림 안료들은 전부  자연에서 얻은 색들이었는데 자연의 색으로 표현된 풍부하고도 기품 있고 우아한 색감은 현대 회화에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저 세상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
(위 그림의 사진과 더불어 앞으로 소개될 그림의 사진들은 인터넷상에서 캡처해서 색감이 엉망임을 미리 알려둔다.)
나는 위 그림에서 성모마리아의 의상  청색에 매료되었는데 마땅히 성모마리아께서 입어 마땅한 성스러운 색이라는 느낌이 팍 왔다.^^
그 당시엔 원료를 쉽게 구할 수 없어 가장 비싼 염료였다고  한다.

이 잘생긴 이는 누구? 아프레히트 뒤러, 자화상 1498년, 52×41cm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는 화가라는 직업이 그다지 높은 신분은 아니었다는데 자기애로 똘똘 뭉친 이 작가는 당당하게 자화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왠지 이 금발의 꽃미남 화가는 그 시절 많은 여자들을 설레게 했을 듯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스스로 화가의 길을 선택한 자긍심 넘치는 화가였다고 한다.

위 그림은 첫 번째 세 번째가 두 번째 그림을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배치된 3단짜리 병풍처럼 제작된 제단화이다.
이 그림의 제작 예상연도가 대략 1500년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에덴동산, 타락한 현실세계, 지옥의 풍경을 묘사한 내용이다.  기괴한 모양의 동물식물들이 인간과 기묘한 조합으로 등장하며 그런 초현실적인 표현들이 음산할 듯도 하지만 전체적인 색감은 화사하고 부드러워 그림 자체는 유니크함으로 다가온다.
이 그림을 그린 히에로무니스 보스는 그 당시 인간의 타락을 경고하는 종교적인 엄격함을 강조했겠지만 21세기의 무신론자인 나는 재밌는 풍자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이런 기발한 회화적 상상력이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656년, 318×276cm

' 시녀들'이라고 후대에 명명된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이며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손꼽는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합스부르크 걸작들 전시회에서도 보았던 마르게리타 공주와 시녀들을 그린 작품인데
아무래도 내 눈에는 왼쪽에 큰 캔버스를 마주하고 관람자를 향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 같다.
가이드의 말대로 어느 정도 물러나 거리를 두고 이 그림을 감상하니 그림 속 거울에 비친 국왕 부부의 얼굴과 계단을 올라가는 남자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살아나며 나 또한 그 시대 궁정 속으로 들어가 왕실 가족과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2일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


내가 오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고야의 이 두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근대가 열리는 역사의 현장을 보는듯하다.
권력에 맞선 민중의 궐기와 탄압!
신과  왕, 귀족이  그림의 주인공이던 시대는 가고 비로소 민중이 주인이 되는 시대의 신호탄이 된 그림 앞에 섰다.
공포에 질린 총살 직전의 두 팔 벌린 이름 없는 이의 모습이 이곳에 전시된 그 어떤 성화보다도 거룩하다.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나오니 스페인에 대하여 나름 많이 알게 되었다.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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