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 온 지 14년쯤 되었나보다.
서울집을 팔았더니 서울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올라 이제 다시 서울 입성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집값도 집값이지만 내가 떠나온 뒤 서울시장이 박원순이라서 부러울 때가 많았다.
그분이 변호사로서 시민운동가로서 보여 준 활동과 역량이 훌륭했기에 서울시장도 그전의 이명박, 오세훈시장보다는 잘 할거란 기대가 있었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고 그는 내리 삼선에 성공하여 차기 대통령 후보의 물망에도 오르게 되었다.
그랬던 그가 대체 왜????
과거 부천서성고문 사건을 비롯하여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변호했던 그 누구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났을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성추행으로
고소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으니 그에 대한 안타까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정치인 박원순보다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한 그의 성품에 호감을 가졌다.
그의 마지막이 어떠했건 그가 평생을 살면서 우리들에게 보여준 모습들은 시민사회에 대한 헌신과 공익적 가치의 추구로 일관되었기에 그의 일생이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분의 사회적 페르소나가 많은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으므로 그의 죽음과 함께 드러난 전혀 이질적인 모습이 당황스럽고 믿기지가 않는다.
본인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 회자될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무척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자신이 익숙했고 심취했던 사회적 페르소나가 직면한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 앞에서 그는 길을 잃고 무너졌다. 사회적 타살을 당하느니 자살을 택한 절박함을 누군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는 워커홀릭이었다고 한다.
뉴스 화면에서 집무실 옆에 마련된 간이 침실을 보았다.
그 침실을 보는 순간 머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로 마음이 미어졌다.
초라하고 누추한 간이침대를 보여주는 언론의 관음증에 치를 떤다. 미친 하이에나들!
집무실에서 잠을 청할만큼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한 불행한 한 남자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쓸쓸한 간이침대.
나는 주제넘게 생각해 본다.
그에게는 마음의 안식처가 있었을까?
그의 외로움을 함께 할 이가 있었을까?
위로 받고 싶은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내밀한 한 남자의 모습을 본듯해 그저 짠할뿐이다.
60넘은 성감수성이 바닥인 아낙네의 무지함은 머리로는 그의 찌질한 남성에 화가 나지만 가슴으론 그 찌질함에 연민을 느낀다.
지금은 그렇다.
가해자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는게 이차가해라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모든 페미니스트들에게 미안하다.
추신)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분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느낌이 그분께 누가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무지의 소치임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