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3월 1일까지.
신성로마제국을 일으켜 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해 온 합스부르크 왕가를 대표하는 컬렉션 총 1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회를 보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은 세 여인의 초상화이다.


스페인의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그당시 스페인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우리에게도 익숙한 바로크시대의 유명한 화가)작품

17세기까지 합스부르크가는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을 통치했는데 제국 유지 수단의 일환으로 왕실 가족간의 근친결혼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펠리페 4세도 오스트리아의 4촌이자 5촌(역시 근친결혼으로)과 결혼하여 테레사 공주를 낳았다.
공주 역시 15살에 외삼촌인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해서 21살 꽃다운 나이로 죽을때까지 4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중 세아이마저 사산되거나 태어나자마자 죽었다니 근친결혼의 저주가 아니었겠나.

마리아 테레지아

합스부르크가의 여자 후계자는 황제가 될 수 없어 남편 프란츠1세가 황제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오스트리아를 다스린 개혁군주로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오스트리아 여왕이다.
그녀는 16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막내딸이 프랑스 루이16세와 결혼한 마리 앙뚜와네트이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뚜와네트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루이 16세의 왕비이다.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는 사치와 문란한 생활로 처형당해 마땅한 왕비로 배웠으나 요즘은 왕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 혁명의 희생양으로, 정치적 살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소 과장되고 조작된 누명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브랑, 왕비가 반대를 무릎쓰고 전폭적으로 지지한 왕실 전속 최초의 여성화가이다.
왕비가 처형당한 뒤엔 망명하여 작품활동을 이어나가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여성의 활동이 어렵던 시절 실력을 알아보고 궁정화가로 총애한 왕비의 안목과 결단은 세간의 왕비에 대한  편견을 희석시킨다.


위의 사진은 1894년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대한 선물로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보낸 조선의 갑옷과 투구이고 아래는 합스부르그왕가의 갑옷이다.
비교불가이지만 그 당시 국력의 차이를 여실히 알수 있는 갑옷이다.



Posted by 구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