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여행을 다녀온지도 한달여가 지났다.
바쁜 일상 속으로 복귀하여 지난 시간들은 빠르게 잊혀져 갔지만 띄엄띄엄 여행기를 쓰며 문득문득 그 장면속으로 들어가 여행을 되새김질하는 것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은 마지막이어서 아쉽기도하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도 함께한다.
이율배반적이다.
난 무조껀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는 꿈을 꾼다.
그러나 현실은 늘 떠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문다.
다시 떠날 날을 기대하며  러시아의 마지막 날을 만끽하자!
기승전 표트르대제!  그가 스웨덴과의 22년 전쟁 승리를 기념하여 지은  여름궁전의  분수공원.
150여개의 분수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원을 둘러보며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당했다.

저 멀리 핀란드만의 바다가 보인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에 버금가도록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여름궁전의 하일라이트는 다양한 모양의 분수이다.
오전 10시에 팡파레와 함께 일제히 시작되는 분수쇼가 장관이며 이곳의 분수는 자연적인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물을 뿜어낸다.1700년대에 그런
기술을 개발했다니 놀라울뿐이다.

오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 푸시킨시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을 관람하였다.
 젊은시절 푸시킨이 다녔다는 귀족학교가 있어 푸시킨시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인의 푸시킨 사랑은 정말 대단합니다^^
예카테리나궁앞에서~~

 표트르대제의 황후 예카테리나를 위해 지어진 궁전인데 딸 엘리자베타가 현재의 화려한 모습의 로코코양식으로 재건축하였다고 한다.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로 그 유명한 호박방이 있는 궁전이다.
호박방의 유래는 표트르대제 당시 동맹관계였던 프로이센의 황제가 선물한 호박으로 만든 서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가 한참뒤 이 궁전의 방
하나에 재현하였다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프로이센의 황제가 선왕이 만든 화려한 호박장식의 서재가 싫어서 철거한것을 선물했단다.
촬영금지인 호박방 내부

프로이센의  황제는 선왕을 증오하여 황실의 호사스런 취향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표트르대제 이후 로마노프 왕조는 유럽의 문화에 뒤지지 않으려고 더더더  호사롭게 그들의 궁전을 꾸미는데 전력투구(?)한듯하다.
예카테리나궁의 화려한 내부

이 호박방의 호박들은 이차대전 당시 해체되어 독일로 옮겨젔는데 전쟁후 되돌려 받지 못하고 새롭게 조성되었다.
예카테리나 궁전 옆에는   그리이스 신전과 같이 이오니아식 회랑에 여러 신들이며 철학자들의 석상이 즐비하다.
회랑위에서 드넓은 정원을 바라보며 철학적 상념에 잠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한다.
좋은건 다 가져다 만든 러시아 황제들이다^^
공원을 내려다 보고 있는 헤라클레스동상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은 궁전에서 시작 궁전으로 끝났다.
화려한 궁전 내부를 보며 황실의 호사스런 삶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광할한 궁전 정원을 아무 생각없이 오로지 시원한 초록빛 공기와
반짝이는 나뭇잎, 파란 하늘과 흰 구름에 취해 걷고 또 걸었던 시간이 너무 좋았다.

여행은 끝나고 또 다시 현실.
깊어가는 가을!  러시아에서의 산책을 그리워하며 동네 호수공원을 산책한다.
나이 육십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며 내게서 젊음은 요즘 말로 일도 없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내 가슴 안에 '젊음'하나 간직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인진 나도 모르겠지만~~~
우리 친구들도 가슴에  각자의 '젊음'을 간직하기를!
Posted by 구름재

렘브란트작 돌아온 탕자,  에르미따주 박물관 소장 

이번 러시아여행이 더욱 뜻 깊었던 점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삼일동안 열심히 안내해 주신 백야나라 이현희님의 훌륭한 가이드 덕분이기도하다.
여행을 다녀와서 비교적 자세한 여행기를 쓰게 된 것도 그분의 상세한 설명을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바램에서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이제는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걸 알기에 매순간 마주했던 시간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여운이 남는 것이리라.
평균수명 백세를 바라본다니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하겠지만 육십 이전의 시간들과 그 이후의 시간은 엄연히 다를것이므로~~
청춘!  젊음!  이런 단어에  비로소 맘이 설레인다는건 이제는 내게서 진정 청춘과 젊음이 없어졌기에 느끼는 아련한 슬픔이다.
그래서 더더욱 낯선 장소에서 보고 듣고 맛보았던 모든 시간들이 다시는 오지 앓을 행복한 순간이었다.
'행복'이란 말은 너무 진부해서 남발하고 싶지 않지만 딱히 달리 표현할 단어를 못 찿겠기에.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유적을 좀 더 안다는게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잠시 그곳에 머무는 시간속에서 나를 잊고, 또 다른 내가 되는 그 순간을 즐기는 거다.
즐긴다긴보담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으로 매 순간이 절실하였으므로~~
어쩌면 이 글은 그 절심함의 기록이다.

상트 둘째날
성이삭 성당 관람
정교회의 이삭 성인의 축일이 표트르대제의 생일과 동일하여 이삭 성인에 봉헌되었지만 동시에 표트르대제를 위해 지어진 성당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대제의 도시니까~~

이 성당이 완공되기까지 40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동원된 인력만도 사십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여러 지역에서 조달한 대리석이며 화강암들의 운반과정, 돌기둥을 세운 공정들이 성당내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국가적 총 역량이 집약된
건축물이다. 그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피,땀,눈물'의 결과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이 신께 봉헌되었다.

모든게 신으로 통하던 시대, 신의 권위에 기대어  황실은  자신들의 권위를 절대화하였으며 스스로를 찬양했다고 할까.

성이삭성당이 프랑스건축가에 의해 신고전주의양식에따라 지어진 성당이라면 피의구세주성당은 독특한 양파 모양 돔형식의 슬라브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표트르대제 이후 유럽의 르네상스 양식을 건축물 등에 반영하였는데 19세기 중반 개혁황제 알렉산드르2세가 암살당한후 즉위한 알레산드르3세는
개혁에 반하는 반동정치를 펼치면서 부왕을 위한 피의 구세주성당을 슬라브적 색채가 강한 복고풍 양식으로 건립하였다.

오후에는 에르미따주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에르마따주 박물관은 예전에 러시아 황제들이 기거하던 겨울궁전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소장품들이 식민지에서 약탈하거나 탈취한 유적들이 많다면 이곳 박물관 소장품들은 오로지 러시아황실의
수집품들과 기증에 의한 물품들이라는데 러시안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신관에서는 주로 인상파 이후의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하였다.
모네, 르노와르,세잔,고흐,고갱,마티스, 피카소 등 등

건축학을 전공하여 예술사조에 조예가 깊은 가이드의 해박한 설명으로 격조높은 그림감상을 하였다.
신관 관람에 이어진 본관 관람
궁궐로 쓰이던 본관의 화려한 실내장식과 전시된 방대한 예술 수집품들을 불과 몇시간만에 스쳐 지나가듯이 감상한다는게 너무 아쉬웠다. 더구나
인해전술의 중국인 관광객들의 물결을 뚫고서 말이다.

저녁을 먹고 겨울궁전 내 공연장에서 백조의 호수 발레 관람을 하였다.

Posted by 구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우리가 3일 동안 묵었던 호텔은 상트 시내를 약간 벗어난 교외에  새로 지어진 호텔이다.
러시아 권력고위층(?)의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 주변 환경이 고즈넉하고 숲길이며 공원이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들뜬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주변을 산책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대제가 핀란드만에 접한 네바강의 하구에 건설한 완전한 계획도시이다.
당시 스웨덴령이었던 네바강 하구 유역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페트로파블로브스키 요새를 새우고 반대편 강기슭에 '유럽을 향한 창' 을 열기
위한 신도시 건설에 착수하였다.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상트페테르부르크라 명하였다.
성 베드로의 도시, 베드로는 표트르 대제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표트르대제는 즉위 초에 신분을 위장하고 유럽을 순방하며 특히 네덜란드에서 조선술을 배워 오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빠르게 유럽화시켜 나간다.
모스크바가 수도였던 그전의 러시아는 250여년간의 몽골지배의 영향으로 아시아적 색채가 강한 나라였다면 표트르대제는 유럽의 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여 러시아가 빠르게 유럽화 하는 기초를 다지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우리가 처음 간 곳은 파블롭스키 궁전이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손자 (훗날 알렉산드르1세가 됨)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여 아들 파벨에게 지어준 궁전이라고 한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독일 출신 러시아 왕후였으나 무능한 남편인 러시아 왕을 살해하고 직접 황제가 되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파벨이
못마땅하여 손자 알렉산드르에게 기대가 컸다고 한다.
이태리 건축가를 초빙하여 만들어진 궁내부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될 겨울궁전 및 여름궁전에 비하면 이건 서막에 불과하였다.

궁전 주변으로는 광할한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왕들의 화려한 사생활을 위한 부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서?
왕과 귀족,권력층들이 누린 부귀영화의 이면에는 그 시절 농노들의 고달픈 삶은 극에 달했음을 같이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볼거리들로 가득한 관광자원을 유산으로 남겨주어 미래의 국민들한테 자부심이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점심을 먹고 데카브리스트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1825년 일어난 데카브리스트 난은 실패한 혁명이지만 그들의 뜻을 기려 광장의 이름으로 남겨 기념하는듯 하다.
나폴레옹전쟁에 참전하여 퇴각하는 나폴레옹군대를 따라 유럽까지 진군했던 청년 장교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유럽에 비하여 뒤떨어진 조국을 개혁하고자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만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표트르대제의 청동 기마상이 위풍당당하게 하늘로 비상하고 있다.

구테타로 남편을 죽이고 즉위한 예카테리나여제가 표트르 대제의 후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 조각가를 초빙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는 표트르대제가 세운 페트로파블롭스키요새이다.
네바강 하구 토끼섬에 스웨덴에 항거하기 위한 요새를 건설하면서 군인과 노동자들이 기도할 수 있는 교회를 요새 안에 건립하여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바울의 성당,즉 페트로파블롭스키 대성당으로 명하였다.

따라서 요새 이름도 페트로파블롭스키요새가 되었다.
요새 안에는 표트르대제가 자신의 아들을 의심하여 가두어 죽인 감옥이 있으며 이후 막심 고리키, 도스도예프스키도 이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고한다.
요새 안에도 표트르대제 동상이 있다.

표트르대제는 키가 2미터에 달하는 장신이었으며 유럽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지 못하게 하여 스스로도 솔선수범하였다고 한다.
여러 초상화에서도 그렇고 수염이 없는  대제의 모습은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

카잔 성당은 '카잔의 성모'라는 이콘화를 모신 성당이다.

위키백과에서 이콘은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나 그리스도  또는 성인들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을 말한다.
그림을 성화,조각은 성상이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카잔의 성모' 이콘화는 카잔에서 어느 소녀의 꿈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예시하여 발견되었다. 러시아가 외세의 침략이 있을때 '카잔의
성모'에게 기도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한다. 기적을 행하는, 러시아에서 가장 공경하는 성화가 되었다.
카잔 대성당 기념품 판매대에 핸펀을 놓고 나왔으나 한참 뒤 그자리에 그대로 있어 가슴을 쓸어 내린 헤프닝도 기적이라면 기적이겠다. 소매치기가
출몰하는 관광지이고 더군다나 카잔대성당은 무료로 입장하는 곳이니 말이다.
또한 우리 태극 전사들도 지난 월드컵에서 카잔의 기적을 이루지 앓았는가 말이다. ㅎㅎ

상트는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할 만큼 많은 운하의 도시이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운하를 따라 핀란드만까지 나가 보았다.
운하를 따라  푸시킨이 자주  다니던 카페를 지나치며 그의 결투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내의 염문의 상대인 당테스에게 결투를 신청, 결국은 자신이 죽게 되는 비극적 결말에 대하여~~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 아닐수 없었겠으나 그 또한 그시절의 낭만이었을까?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운하를 따라가며 그의 시인다운 인생의 끝맺음이 아름답다 여겨진다.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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