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배경음악 2

비틀스를 알게 된 건 알리 맥그로우를 통해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러브 스토리' 영화를 보고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에 홀딱 반해 버린 중1 소녀는 비틀스와 모차르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극 중 여주인공인, 음악을 전공한 대학생 제니퍼가 비틀스와 모차르트를 좋아했으니까.
내가 다닌 중학교는 그 시절에는  드물었던 남녀공학이었다.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가 끝나면 단체로 영화관람을 갔는데,   '돌아오지 않는 강'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러브 스토리' 등이 생각난다.
'돌아오지 않는 강'은 사춘기 남 녀 학생들이 같이 보기엔 쫌 민망한 장연이 있었고 메릴린 먼로의 노래가 인상에 남았다.
https://youtu.be/l_WCMJlpIlQ?si=1PC6cDutXiQIVChT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 그레고리팩과 잉그리드 버그만의 키스  장면이 생각난다.
중1  겨울을 강타한 '러브 스토리'로 저마다의 러브 스토리를 기대하며 영화 속 사랑이 현실이 되기를 꿈꿨다.
https://youtu.be/hz8aaLmgeQI?si=IrbsHyaEBiPjSZjB

한때 짝꿍이 팝송광이었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 등 라디오 음악방송의 열혈 애청자였다. 나도 덩달아 라디오 방송을 듣고 싶었지만 쉽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 당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흑백텔레비전의 보급으로 미국드라마나 영화에 빠져 들기 시작했으니까~~
우리 세대는 미국문화의 홍수 속에서 자란 세대이다.
가요보다는 팝송을 듣는 게 더 폼나 보이는 그런 문화사대주의에 길들여진 세대이다.
그런 와중에도 7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포크송 그룹의 세련된(?) 노래들이 청춘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어니언즈의 편지, 김정호의 하얀 나비, 송창식의 왜 불러, 이장희의 그건 너,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등.
그러나 1975년 박정희 시대, 유신헌법 긴급조치 9호에 의하여  이 노래 대부분이 금지곡이 되었다. 이어서 대마초 사건에 많은 대중문화인들이 연루되어 방송계에서 퇴출되었다.
막 꽃 피우기 시작한 우리의 대중문화예술이 철퇴를 맞아 문화의 암흑기가 도래한 시대였다.
이 시절 흑백텔레비전으로 보는 주말의 명화 한편이 유일한 낙이었다.
https://youtu.be/pX-MvKzkclA?si=NDVRKZotD3yWGN0V


떠 오르는 장면 하나
온 가족이 밥상을 가운데 두고 저녁을 먹고 있다. 방 한구석을 차지한 흑백텔레비전에서는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거행되는 유러비전송콘테스트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때 흘러나온 워털루라는 노래,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단박에 우승곡이 될 것을 직감한 나!(ㅋㅋ) 이후로 대학가요제의 우승곡 감별사가 되었다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
https://youtu.be/Sj_9CiNkkn4?si=y29Js6LnDhiCrldV

중학생 때부터 좋아하기로 한 비틀스의
멤버 중 존 레넌이 1980년 정진질환자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 시절 비틀스를 좋아했던 건 허세였음을 고백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존 레넌이 그렇게 어이없이 죽고 세월이 한참 지난 후 그들을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좋아지게 된 비틀스!  
https://youtu.be/jenWdylTtzs?si=UkbWUboXsSL8N

여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경쟁적으로 작곡하고 노래를 불렀다는 젊은 시절의 폴과 존, 그런 풋풋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비틀스 초기의 노래들은 밝고 경쾌함이 매력이다.
연애만 노래하던 가사에서 인류애 사회 인생 평화에 대하여 노래하게 된 비틀스, 그런 비틀스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https://youtu.be/KQetemT1sWc?si=8i5CMGmOk-5GioA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곡
https://youtu.be/YkgkThdzX-8?si=cKs0kgrFFnYYu5T5

끝으로 마이클 잭슨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물론이고 당시 유행하는 가요나 팝송이 길에 흘러넘치며 어디서나 귀에 따갑게  들렸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70년대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 정말 많이 들렸던 노래가 마이클 잭슨의 '벤'이라는 노래이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200곡이 넘는 곡을 직접 작곡했다고 한다.
'벤'역시 그가 14살에 직접 만든 곡이라니 그의 천재성은 흑인이라는 편견에 가려진 측면이 많다.
https://youtu.be/i7TTSzfs2kw?si=GEYpvj49eDZZEa78


그에게는 아동 성애자라는 누명도 따라다녔으며  아동 성추행 혐의로 오랜 법정 다툼을 겪었다.  결국  무혐의로 판결 났지만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또한 백반증으로 하얗게 변한 피부색을 두고도 백인이 되고 싶어서 피부를 벗겨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그의 이미지가  최악이었던 때가 있었다. 나 역시 그런 편견에 갇혀 있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의 백반증은 광고  촬영 중 머리에 입은 화상으로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는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여러 가지 루머에서 자유로워졌다.
https://youtu.be/Ow1LiPY8TKo?si=u6a_ZEvIK6FKt2wZ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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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EY ROAD . THE BEATLES

노래가 있어 좋았다!
내 삶의 배경음악 1

산책할 때나 운전을 할 때 또 음식을 준비할 때도 에프엠 음악방송을 듣거나 멜론으로 음악을 듣는다.
나의 지루한 일상에 음악은  조미료이다.
음악도 음식과 같아서 문득 지난 시절 특별한 기억과 함께 그 순간의 음악이 떠 오르곤 한다.

옛날 옛적 손바닥만 한 트래지스터 라디오가 집에 있던 유일한 음향기기였던 시절 분명 그 시절부터 유행가라는 걸 듣기 시작했었다.
때는 1960년대 말쯤 전축이라는 음향기기가 집에 들어왔다. 이웃에 극장에서 음향기사로 일하시는 친구 아버님께서 야매로(ㅋㅋ) 만들어 주셨다. 기억에 남는 엘피판은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 버린 사랑'이다.
https://youtu.be/NgMTf20rP78?si=miHBzO-nkvpADb1n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을 번안한 곡이다.
집에 전축이 있다면 한 장 이상은 있었을 국민가수 이미자의 앨범도.
그 시절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대 유행했었다.
https://youtu.be/TD9yma7pkN0?si=z5JcxLOsxlwZi8-N

지금의 트로트와는 다른 품격이 느껴지는 곡이다
이웃에 불법  양조장이 있었는데 그 집 고등학생 언니가 프랑스 영화 '남과 여'를 보고 와서 자랑삼아 줄거리를 얘기해 주었다. 영화도 엄청 유행했고 덩달아  주제곡도 많이 흘러나왔는지 아직도 그 음이 생생하다.
https://youtu.be/9tMd8n_eXQU?si=jrDMmmEQfb38fx_m

국민학교 5학년 때 이웃에 언니 친구네가 이사를 왔다. 그 집엔 대학생 언니  오빠도 있고 고등학생  언니에 우리 언니 친구인 중학생 언니, 나보다 학 학년 위지만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된 아이가 있었다. 언니 오빠 탓인지 그 친구는 무척 조숙했다. 그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  전축을 틀어 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라고 앨범재킷을 보여주는데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한창 감수성 충만한 소녀가 좋아할 만한 강열한 외모의 사진이었다. 외국밴드라면 비틀스가 대세였던 시대였는데 그 친구가 제일 좋아한 밴드는 도어즈라는 밴드이고 앨범 사진의 주인공은 리더인 짐 모리슨이다.
https://youtu.be/cq8k-ZbsXDI?si=Tpb5ux1dW9Z6yuZG

그날 들었던 음악은 기억나지 않지만 도어즈라는 이름과 퀭한 눈을 한 머리 긴 이방인의 이름 짐 모리슨은 뇌리에 박혔다.
한참 뒤 밴드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즐겨 듣게 되었을 때 도어즈라는 밴드와 요절한  짐 모리슨이  나름 그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임을 알게 되었다. 60년대 말의 음악이지만 지금 들어도 좋다.
60년대 말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이다.
앞서 말한 친구의 대학생 언니가 이대생이라서 더욱 잊히지 않는다.
그 공연이 얼마나 난리굿이었는지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https://youtu.be/y6E2hHHg3V4?si=qDVLFHg2t3V2BnP-

역시 이웃에 조리공장이라고 소규모 가내수공업 공장이 있었는데 그 집의  여고생 언니는 말하자면 공부는 뒷전인 살짝 바람난(ㅋ) 야간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나를 무척 이뻐해서 한 번은 미아리 극장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때 보았던 영화가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던 거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영화관에 걸려 있는 여배우 사진을 가리키며 날더러 좀 닮았다 해서 우쭐했었던 기억이 난다.
https://youtu.be/ycvycKh2_lo?si=SEzbdENR0ZoD0IIT

덩달아 남진의 노래도 엄청 들었다.
바람난 여고생 언니가 좋아한 가수는 문주란이다. 나를 앞에 앉혀 놓고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를 열창하곤 했다
https://youtu.be/GYZ4BNs8Wp8?si=af9aTyiwVKNlbPfx

6학년 땐가  이사를 했다.
허름한 산동네 두 칸 방에서 그 시절 막 지어지기 시작한 서민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간 집 옆집에 역시 언니 오빠가 있는 대가족이 살았는데 부모님이 서울 시내 큰 시장에서 장사를 하셔서 밤늦도록 아이들 집합소가 되었다.
기억에  중학생 우리 언니와 또래가 있어 그 집에 자주 갔는데  대학생이었을까 큰 오빠도 가끔 어울려  놀아 주었다.
방에 옹기종기 모여 귤도 까먹고 외국인들 사진으로 도배된 잡지도 보여주고 했는데 야한 잡지는 아니었다.
그 집 오빠는 사이먼과 가펑클을 좋아했던 듯.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철새는 날아가고', 그 당시 알게 된 팝송이다.
https://youtu.be/4G-YQA_bsOU?si=BGQz73nTcnhMZRt2

https://youtu.be/fYKV7onO1n8?si=NajxXv__ORHoDLN4

슬프게도 시장에 큰 불이 나서 점포를 잃은 옆집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가고 나는 더 이상 좋은 팝송을 알지 못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https://youtu.be/6JUbFj0BIc4?si=3swJdD1H09YyhChE

대학생이 되어 좋아했던 노래

참!  잊을뻔했다.
막내 외삼촌이 군대 가기 전 몇 개월을 우리 집에서 언니 과외 선생으로 있었는데 밤마다 우리 삼 남매 앉혀 놓고 전구불 밑에 서서 열창하던 '뜨거운 안녕'을 어찌 잊으랴

https://youtu.be/HDjdHuW2fdM?si=6qQSxRwVRYNJZBLr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나지만 '아이가 태어 나면 온마을이 키워 낸다' 는 말이 있다.
문화생활의 접촉이 불가능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미약하나마 문화적 감수성의 싹을 틔워준 그 시절의 친구, 오빠, 언니들께 감사를~~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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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를 쓰기 위해 갔었던 도시를 검색하다가 프랑스 안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어떤 이의 글을 읽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유행한 뒤로  이곳저곳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 한 달 살기가 요즘의 트렌드가 되었나 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세상의 모든 도시는 가까이에 있다. 이번 여행에서 잠깐 맛보기 한 도시 안시, 그래! 한 달 살기 하기 딱 좋은 도시이다. 샤모니에서 안시로 이동하였다

알프스산의 빙하가 녹아내린 안시호수,
호수를 감싸고 있는 알프스 산맥이 멀리 보이고. 몽블랑은 어디쯤~~

사랑의 다리, 여기서 연인이 입맞춤을  하면 평생을 함께 한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이런 아름다운 풍광 아래서라면 없던 사랑도 생기겠다^^  위기의 커플이 이곳에 왔다가 새로운 시작을 다짐할 수도~~

운하를 따라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이어지는 구시가지, 가운데 아담한 성이 안시성(?)
12세기에 귀족의 집으로 지어진 릴르궁전인데 수중감옥이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감옥이었던  물 위에 떠 있는 궁전이 어두운 역사를 품은 아름다운 관광상품이 되었다.

이곳의 유명한 젤라토 아이스크림, 그냥 평범한 맛!

알프스 산맥이 감싼 넓은 호수가 있고 중세의 역사가 있는 풍광 좋은 안시는  스위스 제2의 도시 제네바와 인접해 있어서 여행자들이 거쳐 가기 좋은 도시이다. '안시에서 한 달 살기' , 여건이 허락한다면 도전해 볼만한 매력적인 상품이다^^
우리도 프랑스 안시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담날 다시 국경을 넘어 프랑스의 작은 마을 이브아르로 이동하며 국경을 넘나들었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에 위치한,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인  레만호수가에는 제네바, 로잔,
몽트뢰등의 스위스 도시와 프랑스 쪽으로는 에비앙생수로 유명한 에비앙이 있다. 우리가 간 이브아르는 레만호숫가에 자리 잡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이다. 제네바 레만호수까지 와서 몽트뢰를 못 가보다니 ㅠㅠ. 내 젊음을 한때 책임졌던 밴드, 퀸의 프러드머큐리가 좋아했다는  몽트뢰를 가 볼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옛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고풍스러운  시골 마을 골목을 거닐다 보면 골목 끝에 레만호수가 짠하고 나타난다.

호수의 물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오수는 어찌 처리되는지 궁금하다.
오수가 호수로 유입된다면 이런 깨끗함은 유지할 수 없을듯하다.  사람이 살고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면 오염은 시간문제일 텐데 이 청정함을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프랑스에서 다시 스위스 제네바로 이동하였다.
제네바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국제기구의 본부가 많은 스위스 제2의 도시이다.

140미터의 높은 물기둥, 제네바  호수(레만호)의  분수

꽃시계 앞에서 기념촬영

제네바에서 머문 시간은 두어 시간  남짓이다.
레만호의 분수 기둥을 보고 꽃시계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호숫가 영국공원 산책 후 파리로 가기 위해 테제베 열차를 타러 제네바역으로 이동하였다.
몽블랑서부터 걸린 감기 몸살로 최악의 건디션으로 무거운 트렁크와 씨름하며 올라탄 테제베 열차로 파리까지 가는 여정은 많이 힘들었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설렘과 기대는 피곤함에 묻히고 감흥도 반감될 즈음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파리에 도착했다.
저녁에~~
우리에게 주어진 파리여행은 내일 단 하루!

도착한 날 저녁식사로 그 유명한 달팽이요리를 먹었다.
식당은 형편없었지만 달팽이는 먹을만했다.
담날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시작한 파리관광은 결론부터 말하면 "파리를 갔으나 난 파리를 보지 못했네!"이다.

영국의 찰스국왕 방문으로   파리시내가 교통통제가 되어 극심한 교통정체로 겨우 도착한 오르세미술관 관람은 1시간에 끝내야 했고

에펠탑은 먼발치에서 ㅠㅠ



개선문. 다행히 비가 그쳤다.

파리는 기대했던 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하긴 스케줄 자체가 그랬으니까
여행사  투어다 보니 정해진 시간 안에 명소  위주의 맛보기식 관광의 한계이다.
단 하루 파리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나라면 오르세 미술관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는 걸 선택하겠다. 오르쉐미술관은 이번 여행에서 제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또 가면 되지!  또 허세를 부려 본다.ㅋㅋ

앞서도 언급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난 후 심하게 앓았다.
뒤늦게  두 달 여가 지난 시점에서 다시금 여행을 반추해 보니 아쉬움이 많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있든 지나간 것은 늘 아쉬움을 남기는 것인지.
아님 지금 이곳 이 시간에 아쉬움이 많아서인지.
늘 새로운 시간  또 다른 장소로 떠남을  꿈꾼다.
https://youtu.be/HaZpZQG2z10?si=NU0evJnsN6x7Dk2Q

함께 한 친구들 고맙다!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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